“천만 원이면 이영자 맛집·마마무 병원”…방송가 사칭주의보_송아지를 얻는 방법_krvip

“천만 원이면 이영자 맛집·마마무 병원”…방송가 사칭주의보_베타 로고_krvip

"천만 원 입금하면 이영자 씨 단골 맛집으로 소개해드립니다"

지난 16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35살 한경진 씨는 매장으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MBC 예능 프로그램 '전지적 참견 시점'(이하 '전참시')의 작가라고 자신을 소개한 상대는, 한 씨의 가게에서 방송을 진행하고 싶다는 솔깃한 제안을 했습니다.

게다가 '먹방'계의 대모, 방송인 이영자 씨가 직접 방문해 단골 맛집으로 소개해준다는 말에 한 씨는 마음이 완전히 움직였습니다. 방송만 잘 나가면 유명세를 탈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죠. '전참시' 제작진은 저작권과 마케팅 지원, 글로벌 자막 지원 혜택까지 계약 내용을 꼼꼼하게 정리한 파워포인트 자료도 보내왔습니다.


제작진 측이 요구한 협찬 비용은 천만 원. 이들은 한 씨에게 "방송통신위원회 방송 공시가가 3천만 원이 확정돼 있으나 방송제작비 2천만 원이 지원돼 업체가 실제 부담해야 할 비용은 천만 원"이라고 설명하며 "방송 시일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빠르게 계약서를 회신해달라"고 강조했습니다.

한 씨가 "천만 원은 조금 부담되니 할인해줄 수 없겠느냐"고 묻자, 직접 협찬금 추가 지원처를 알아봐 주기도 했습니다. 제작진 측은 "이영자 씨가 입을 티셔츠 업체에서 협찬이 추가로 들어와 3백만 원을 지원받기로 했으니 (한 씨 가게와) 7백만 원에 방송을 진행할 수 있게 됐다"며 부가세 70만 원을 더한 7백7십만 원을 입금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한 씨가 미심쩍다고 느낀 건 이 다음부터입니다. 사업자등록증과 통장에 적힌 프로덕션 이름을 포털사이트에 검색해보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사기 이력 조회까지 해봤지만 아무런 내용이 나오지 않았던 겁니다. 그래서 직접 MBC 대표 전화로 걸어 문의했고, 해당 번호를 가진 제작진은 인사정보 시스템상에 뜨지 않는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게다가 상담 직원은 "오늘만 '전참시' 협찬 관련 문의가 두 번째"라며 "앞서 '나 혼자 산다'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협찬이 있으면 돈을 받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내고 진행한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한 씨가 의심을 품고 즉각 문제를 제기하자, 제작진 측은 오히려 "대표번호로 문의하면 잘 모를 거고, 제작사 쪽으로 문의해야 한다"며 당당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한 씨도 지지 않고 "인사정보시스템상에 등록된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주면, 직접 확인해보겠다"고 응수했습니다. 이후 '자칭' 제작진과는 연락이 끊겼습니다.

한 씨는 "이영자 씨가 온다고 하면, 식당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소위 '대박 기회'"라며 "혹할 수밖에 없는 좋은 조건을 내걸고 사기를 친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한 씨는 다행히 입금 직전에 피해를 막았지만, 이들이 얼마나 많은 식당에 협찬 문의를 했을지, 또 실제 피해를 본 업자들이 얼마나 있을지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마마무 시술 병원·김준현 먹방 맛집"…방송가 곳곳에서 제작진 사칭 주의보


MBC '나 혼자 산다'와 SBS '미운 우리 새끼', 코미디 TV '맛있는 녀석들'에서도 최근 비슷한 피해가 속출했습니다. 각 프로그램은 공식 홈페이지와 방송 자막 등을 통해 시청자들의 주의를 거듭 당부했습니다. 방송사에서는 협찬을 빌미로 금전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지난 6일 수원시의사회는 홈페이지 공지사항에 "'나 혼자 산다' 제작진 사칭 협찬요구는 사기입니다"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이 글엔 자칭 '나 혼자 산다' 작가가 보낸 협찬 섭외 메일이 올라와 있습니다. 앞서 한 씨가 받은 메일과 형식이 유사합니다. 식당만 병원으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이들은 "방송 컨셉은 마마무의 4인 4색 뷰티 특집이고 각 멤버별 시술이 진행된다"며 "원장님 위주의 자문방송이나 원내홍보를 위한 VCR 방식으로 진행 예정"이라고 자세한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방송통신위원회 방송 공시가' 5천만 원 중 제작비 3천만 원이 지원돼, 병원에선 2천만 원만 지불하면 된다고 제시합니다.

하지만 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는 KBS와의 통화에서 "해당 내용에 대해 전혀 들어본 바 없으며, '방송통신위원회 방송 공시가'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며 "명백한 사기이므로 경찰이 나서야 할 문제라고 본다"고 밝혔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궁금해 기자도 이들에게 연락을 시도해봤습니다. 이들은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과 상태 메시지까지 치밀하게 꾸며놨습니다. "막내 작가 000입니다", "특집방송 대박 나자" 등의 문구를 띄워놓기도 하고, 실제 해당 프로그램 PD와 작가의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섭외 메일에 소개된 번호와 내선 번호로 전화를 걸고, 카카오톡 메시지도 남겨봤지만 묵묵부답. 심지어 착신이 금지된 번호도 있었습니다.

KBS의 한 예능프로그램 제작진은 "회사에는 협찬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가 따로 있고, 보통 지역 관광공사나 관공서를 통해 섭외한다"며 "PD나 작가가 개인적으로 섭외하는 경우가 드물 뿐 아니라, 제작진은 오히려 장소 사용료를 지불하는 입장이지 돈을 받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전했습니다.

경찰 관계자 역시 "돈을 실제 입금하지 않았더라도 사기미수죄가 성립할 수 있다"며 "실제로 금품을 제공한 피해 사례가 접수된다면 수사에 용이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귀가 솔깃할 만한 가짜 협찬 제안으로 업주들을 울리는 제작진 사칭 피해, 더 큰 피해를 막으려면 적극적인 신고가 필요하다고 경찰은 당부했습니다.


※ KBS 제보는 전화 02-781-4444번이나, 카카오톡 → 플러스 친구 → 'KBS 제보'를 검색하셔서 친구맺기를 하신 뒤 제보해주시기 바랍니다. KBS 뉴스는 여러분과 함께 만들어갑니다. 많은 제보 부탁드립니다.